정치
조선의 국모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
구름속태양
2022. 8. 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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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제국 자객들이 무장한 체 명성황후가 머물고 있는 옥호루로 달려가 궁녀들을 무참히 살해하면서 명성황후를 찾아내어 살해하고 명성황후의 시신을 불태우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 질린 살해당한 사건을 을미사변이라 한다.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는 4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므로 조선의 국모를 무참히 살해한 일본제국의 만행을 우리 시대뿐 아니라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되기에 국민들과 같이 살펴보기로 한다.#.
을미사변이란.
시기. 1895년 음력 8월 20일 조선의 국모 명성 황후 시해 사건 및 집단 살해 사건.
피해자, 명성황후(왕후 민 씨) 외 궁녀 및 궁중 인사 등.
사건 장소, 국왕이 사는 경복궁 안 옥호루.
사건 현장 모습, 조선의 국모 민 씨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 불태운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
일본제국은 동학 농민 운동을 핑계로 조선에 들어왔다. 그러나 조선의 요청으로 한반도에 들어와 있던 청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이 전쟁이 청일 전쟁이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은 청나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어냈다.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손잡고 반일 정책, 즉 일본제국을 반대하고 멀리하는 명성황후에게 앙심을 품고 시해하게 된 것이다. 일본제국은 이 사건으로 일보 제국의 침략을 막으려 했던 고종의 가장 큰 조력자인 명성황후를 제거하고 다시 친일 대신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은 조선에까지 그 세력을 넓혀가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이 일본제국의 세력이 조선에서 커지는 것을 우려해 일본제국에게 압력을 넣었다. 그러자 일본제국은 조선에서 물러났고, 조선은 러시아와 손잡고 친일세력을 제거했다.
일본제국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고종을 위협했다. 친일파 김홍집을 내세워 을미개혁을 실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태양력 사용과 종두법 실시.
2. 우체국 설치.
3. 단발령 등.
일본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개획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백성들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별 령에 더욱 강하게 반발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본제국을 몰아내자고 을미의병을 일으켰으며, 이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일본제국과 대립하고 있던 러시아의 힘을 빌리려고 1896년 2월 11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를 역사에는 '아관파천'이라 한다.
참고로 을미개혁을 단행한 김홍집 내각은 물러났지만 조선의 국격과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친러 파가 정부를 구성해 조선 내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일본제국이 왜 조선의 국모를 무참히 살해한 것과 조선의 국력이 왜 쇄약 했는가를 꼭 기억하기 바란다. 국력의 쇄약은 바로 정치인들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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